Medicine Story
생리의학스토리
1930
난이도 : 초급
ABO혈액형의 비밀 : 칼 란트슈타이너
(칼 란트슈타이너: 다양한 기초과학분야를 섭렵한 칼 란트슈타이너)
관련연도: -
필자 : 김혜연, 배애님 박사

1930년 어느 저녁, 연구소 동료인 필립 라빈이 란트슈타이너의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그는 뜻밖의 광경을 목도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분위기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가족들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흥분도 읽어 낼 수 없었다. 그 날의 감격스러운 소식을 가족들은 전혀 모르는 표정이었다. 카를 란트슈타이너는 부인과 아들에게 자신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소식을 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폴리오 연구와 면역학 연구에서의 성취, 그리고 혈액형의 발견이라는 혁혁한 성과로 인해, 14명의 노벨상 추천자들이 1923년부터 란트슈타이너가 노벨상을 받는 그 해까지 7년간이나 지속적으로 그를 노벨상 후보로 천거했고, 결국 1930년, 혈액형의 발견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이라는 값진 결실을 맺게 된다. 그가 혈액형을 발견한 지 29년 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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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Landsteiner 카를 란트슈타이너

 


출생: 1868년 6월 4일, 오스트리아,

사망: 1943년 6월 26일, 미국, 뉴욕

노벨상 수상당시의 기관: 미국 뉴욕, 라커펠러 의학 연구소 (Rockefeller Institute for Medical Research, New York, NY, USA)

수상동기: 인간 혈액형 종류의 발견 (for his discovery of human blood groups)

(출처. © Nobel Media AB 2013)

1) 다양한 기초과학분야를 섭렵한 란트슈타이너

1930년 어느 저녁, 연구소 동료인 필립 라빈이 란트슈타이너의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그는 뜻밖의 광경을 목도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분위기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가족들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흥분도 읽어 낼 수 없었다. 그 날의 감격스러운 소식을 가족들은 전혀 모르는 표정이었다. 카를 란트슈타이너는 부인과 아들에게 자신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소식을 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폴리오 연구와 면역학 연구에서의 성취, 그리고 혈액형의 발견이라는 혁혁한 성과로 인해, 14명의 노벨상 추천자들이 1923년부터 란트슈타이너가 노벨상을 받는 그 해까지 7년간이나 지속적으로 그를 노벨상 후보로 천거했고, 결국 1930년, 혈액형의 발견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이라는 값진 결실을 맺게 된다. 그가 혈액형을 발견한 지 29년 후의 일이다.

1868년 란트슈타이너의 성장 배경

 

오스트리아 비엔나, 51세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신문 발행인인 법학박사 레오폴드 란트슈타이너(Leopold Landsteiner)는 페니 헤스(Fanny Hess)와의 결혼 1년만인 1868년 6월 14일에 카를 란트슈타이너를 얻게 된다. 바로 30년 후 인간 혈액형 발견으로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과학자가 될 인물이었다. 카를 란트슈타이너의 아버지는 그가 6세 되던 해에 생을 마감했고 다른 형제가 없었던 란트슈타이너는 아버지를 여읜 후 어머니와 단 둘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이 두 가족은 조국에서도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없었다. 편모슬하에서 보낸 유년시절, 그리고 그 시대의 사회적 불평등 요소가 그를 내성적이고 사색적인 성격으로 자라도록 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를 홀로 키워주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란트슈타이너는 어머니의 얼굴을 본 뜬 조각을 만들어 평생 동안 벽에 걸어 두었다고 한다. 그만큼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두 모자에게 가해졌던 사회적 부당함이 모자간의 정을 그토록 돈독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란트슈타이너의 집에는 유난히 책이 많았다. 그의 집을 방문 했던 지인들에 따르면 란트슈타이너의 가족은 노벨상을 수상한 그날처럼 언제나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란트슈타이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아버지의 직업과 책이 많았던 집안 분위기 등이 자연스럽게 연구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성장 환경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림)Leopold Landsteiner Fanny Freiberg Landsteiner

(출처. http://www.geni.com/people)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천재 과학자들의 경우처럼 란트슈타이너 역시 학창시절 두각을 드러내는 학생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란트슈타이너의 성적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향상되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대학(University of Vienna)에 입학하여 의대에서 면역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그림) 1884년, 비엔나 대학의 본관 전경.
(출처. University of Vienna Website. https://www.univie.ac.at/en/university/history-of-the-university-of-vienna/)

 

1891년 학위 취득, 그리고 유학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에서 의학 학위 논문을 발표한 란트슈타이너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의사가 아닌 연구자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학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했고, 주저
의사가 아닌 연구자의 길을 택했다. 그는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습득하기 위해 저명한 과학자들을 찾아다니며 배우고 연구했다.

어린 시절의 학교 성적으로는 크게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었지만 대학 입학 당시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방대한 지식을 쌓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다양한 지식의 원천으로서 독서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대목이다.

그는 비엔나 대학에서의 학사 과정 중에 이미 생화학 연구에 깊이 몰두하고 있었다. 졸업하던 해, 식생활이 혈액 구성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로 논문을 발표했으며, 이때부터 이미 혈액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혈액 연구를 하면서 화학 관련 지식이 부족함을 깨닫고, 졸업 후 독일로 이주, 유럽의 저명한 화학자들을 찾아가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에밀 피셔(laboratory of Emil Fischer at Wurzburg), 밤베르거(laboratory of E. Banberger at Munich) 연구실을 거쳐 한쯔히와 숄(laboratory of Arthur Hantzsch and Roland Scholl at Zurich) 연구실까지 세 연구실에서 5년간 연구하며 화학 지식을 습득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논문을 발표했고 동시에 다른 교수들의 강의에도 빠짐없이 참석하는 열의를 보였다. 함께 일한 세 명의 교수 중, 에밀 피셔는 당과 퓨린의 합성(sugar and purine synthesis)에 관한 연구로 훗날 노벨상을 받은 저명한 과학자이기도 하다. 혈액형을 구분하는 방법에는 30여 가지가 있다. 이 중 란트슈타이너가 찾아낸 ABO식으로 혈액을 구분하는 경우, 어떤 종류의 당이 단백질에 결합 되어 있느냐에 따라 그룹을 나눌 수 있는데, 이때 에밀 피셔 연구실에서의 경험도 란트슈타이너가 혈액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출처. © Nobel Media AB 2013)


그림) Hermann Emil Fischer
(Public domain. Freely licensed media files)

1896년, 비엔나로 돌아온 란트슈타이너, 혈액형 연구의 밑거름을 다지다

 

유학 중, 여러 연구실을 거치며 화학 지식을 습득한 란트슈타이너는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돌아와 비엔나 병원(Vienna General Hospital)에서 다시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이미 대학 시절 어머니와 함께 카톨릭으로 개종 했지만 유대인이라는 꼬리표와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오스트리아에서는 조교 자리도 얻기 힘들었다. 그러나 란트슈타이너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연구에 필요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게을리 하지 않았고, 어떠한 열악한 환경에서도 연구에 대한 열정을 굽히지 않았다. 1896년, 란트슈타이너는 비엔나 소재 하이젠 연구소(Hygiene Institute at Vienna)의 멕스 그루너(Max von Gruner) 박사 팀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면서 면역의 기전과 항체에 관한 연구에 몰두 했다. 그러던 중 비엔나 대학 부근의 병리해부학 연구소를 찾게 되고 그 곳에서 엄격하고 깐깐하기로 소문난 세균학자 바이크셀바움(A. Weichselbaum) 교수 밑에서 조수로 일하게 된다. 임금을 받지 않고 일을 할 테니 조교로만 받아달라고 청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897년부터 1907년까지 그는 이 병리해부학 부서에서 일을 할 수 있었고, 그 기간 동안 혈청학, 세균학, 바이러스학 그리고 병리해부학에 관한 75편의 논문을 발표 했다. 또한 3,600여구의 시신을 부검, 연구했는데, 이는 10년이 채 못 되는 짧은 기간에 이룬 일이었다. 1903년, 바이크셀바움 교수는 란트슈타이너의 스승으로서 박사 후 과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뇌수막염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를 발견한 이 연구실에서 란트슈타이너는 질병의 해부학보다는 질병의 생리학에 관련한 일을 주로 하게 됐다. 이는 같은 연구소의 다른 연구원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는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바이크셀바움 교수의 적극적인 지지로 무리 없이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물론 바이크셀바움 교수와 함께 연구한지 1년이 지난 후부터는 교수의 신임과 함께 임금도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1908년부터 1919년까지 비엔나 소재 종합병원에서 사체 부검자로 근무했고, 1911년에는 비록 전임은 아니었지만 비엔나 대학의 병리해부학 교수로 임용되었다. 란트슈타이너는 교수로서 해부학을 연구하면서 의사들에게 병리해부학을 강의했고, 동시에 사체 부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생계와 연구에 대한 욕구 모두를 채워 줄 수 있는 좋은 조건이었다.

또한, 같은 종합병원에 내과의사로 있었던 에윈 파퍼(Erwin Popper)와 함께 신경계에 침입하여 마비를 일으키는 회백수염(poliomyelitis)의 원인 바이러스인 폴리오 바이러스(poliovirus)를 밝혀냈다. 란트슈타이너는 이 질병으로 사망한 어린이의 뇌척수를 갈아 질병의 원인 물질인 바이러스를 얻어 냈고, 이를 원숭이에게 주사하여 연구했다. 비엔나에서 연구에 필요한 원숭이가 부족하게 되자, 프랑스 파리 소재의 파스퇴르 연구소로 옮겨 동료들과 함께 회백수염의 면역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했으며 관련 기구를 창립하기도 했다. 1923년 봄, 뉴욕으로 본거지를 옮기고 그 곳에서 약 20여년의 연구 생활을 보내면서 혈액형 발견이라는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됐다. 향년 75세로 생을 마감한 란트슈타이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연구실에 있었다고 한다.

(출처. © Nobel Media AB 2013,

© The American Association of Immunologists, Inc., 위키피디아)

2) 혈액 응집과 수혈 연구로 혈액의 종류를 발견하다

1901년, 혈액 응고에 관한 보고와 혈액형의 발견

1875년, 란도이즈(Leonard Landois)는 인간이 다른 동물의 혈액을 수혈 받으면 혈구가 혈관 안에서 뭉쳐져 망가지며, 헤모글로빈이 분리 방출된다고 발표했다.


그림)Leonard Landois
(Public domain. Freely licensed media files)

“건강한 사람의 혈청은 동물의 적혈구에만 응집효과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적혈구에도 반응을 보인다. 이와 같은 현상이 개인차에 의한 것인지 상처 또는 감염에 의한 것인지는 향후 정립되어야한다… 이러한 연구에서는 아직 아무런 결과가 보고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가장 단순한 실험방법과 가장 성공 전망이 높은 연구 재료를 선택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개인 간의 혈청과 적혈구를 반응시키는 실험을 구성했다.”

- 란트슈타이너의 기록 중에서.

(출처. ScienceHeroes.com, © 2008-2010 94W Holdings, Inc.)

1900년, 란트슈타이너 역시, 두 사람의 혈액이 만나면 뭉친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이듬해인 1901년, 이것이 혈액과 혈청이 만나서 생기는 결과임을 발견해냈다. 또한, 동물의 혈액이 아닌 사람의 혈액을 다른 사람에게 수혈해도 비슷한 반응이 나올 수 있으며, 수혈 초기에 쇼크, 황달, 혈뇨 등의 증상이 수반됨을 지적 했다. 란트슈타이너는 혈액의 그룹은 유전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혈액의 그룹으로 친자확인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제안했다.

그럼 여기서 혈액과 혈청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혈액은 여러 가지 구성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혈액을 시험관에 담아 몇 시간 동안 가만히 두면 각 성분의 무게에 따라 여러 개의 층으로 나뉘게 된다. 이 나뉜 층들이 혈액의 각기 다른 구성 성분인 것이다. 이렇게 분리가 된 혈액 성분들 중, 가장 아래쪽에 가라앉은 성분이 적혈구(red blood cells, 가장 무겁기 때문)이고, 그 바로 위층은 백혈구와 혈소판(white blood cells and platelets), 그리고 가장 위층의 노란색을 살짝 띄고 있는 투명한 액체가 혈청(serum)이다. (참고: 혈청은 혈장(plasma)과는 다름) 란트슈타이너는 여러 가지 혈액의 구성 성분 중, 가장 아래층에 가라앉는 적혈구 부분과 다른 사람 (혹은 동물)의 혈액 중 가장 윗부분을 차지하는 혈청을 섞으면 어떤 경우에는 덩어리(agglutination)를 이루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덩어리가 관찰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혈액을 포함한 5명의 다른 동료들의 혈액을 적혈구 부분과 혈청 부분으로 각기 분리한 후 나올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시험해 보았다. 6명의 혈액이므로 총 30가지 서로 다른 경우의 실험을 수행했을 것이다. 란트슈타이너는 각 샘플들을 섞었을 때 덩어리가 지는 경우를 양성(positive), 그렇지 않은 경우를 음성(negative)이라고 표기 했다. 모든 경우의 수를 관찰한 후 이런 덩어리가 생기는 응집(agglutination)은 정상적인 혈액의 응고(clotting, 상처가 났을 때, 잠깐의 출혈 후 피가 굳는 정상적인 현상)와는 다르다는 확신을 가졌고, 또한 질병에 의한 현상도 아니라는 확신 하에 이를 증명하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더 많은 샘플로 여러 차례 실험을 수행하고 나서 그 결과들을 수학적으로 접근하여 두 가지의 다른 경우가 있을 것으로 가정했다. 그는 이 두 가지의 경우를 각각 A와 B로 분류하고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연구 노트에 기록했다.

“22명의 혈액샘플을 관찰한 결과, 놀라운 규칙성을 발견했다. 태반에서 분리한 혈액은 예외적으로 어떤 샘플과 섞어도 응집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 이외의 경우, 혈청은 세 가지의 그룹으로 나눌 수 있었다. A그룹의 혈청은 B그룹의 혈구와 반응했고, 같은 A그룹의 혈구와는 반응하지 않았다. A그룹의 혈구는 B그룹의 혈청과 섞은 경우에도 같은 결과를 얻었다. 세 번째 그룹(C그룹)의 경우 혈청을 A그룹이나 B그룹의 혈구와 섞었을 때 응집이 일어났지만, 반대로 C그룹의 혈구는 A나 B그룹의 혈청에 의해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다시 말하면, 이 실험의 경우 최소한 두 개의 다른 종류의 응집소(agglutinin,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혈액을 결정하는 항체를 의미함)가 존재 한다고 할 수 있다. A에 존재하는 응집소, B에 존재하는 응집소, 그리고 C에는 두 가지의 응집소가 모두 존재한다.”

(출처. ScienceHeroes.com, © 2008-2010 94W Holdings, Inc.)

란트슈타이너는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해 사람들의 적혈구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응집현상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혈액형인 것이다. 그는 A, B, C 세 가지의 혈액형을 제안했고, 이후에 C형을 제로형(숫자 0)으로 불렀으며, 현재 O형이 되었다. 즉, A항원이 있는 형이 A형, B항원이 있는 혈액은 B형, 항원이 없는 혈액형은 O형(C 형)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수혈이 어떤 경우에는 성공적이고, 어떤 경우에는 사망에까지 이르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는 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었다. 란트슈타이너는 자신의 이 연구 내용을 1901년, ‘정상인 혈액의 응집 현상’ (Ueber Agglutinationserscheinungen normalen menschilchen Blutes, 영문: On agglutination phenomenon of normal human blood.)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했다. A, B, 그리고 C형이 밝혀진 그 이듬해인 1902년, 란트슈타이너의 제자인 알프레드 디카스텔로(Alfred von Decastello)와 안드리아노 스털리(Adriano Sturli)가 나머지 혈액형인 AB형(A, B 항원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 혈액)을 발견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네 가지 종류의 보편적인 혈액형이 모두 보고 된 것이다.

1923년, 뉴욕으로 이주, 그리고 또 다른 종류의 혈액형 발견

 

1차 세계대전으로인해 오스트리아에서 네덜란드로 이주하여 연구를 계속했고, 1923년 뉴욕의 라커펠러 의학 연구소(Rockefeller Institute for Medical Research in New York)로부터 연구직의 자리의 제안을 받으면서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 했다.

라커펠러 의학 연구소로 옮긴 란트슈타이너는 알러지와 면역학적 문제에 관한 연구를 주로 수행했다. 그와 동시에, 20년 전부터 해왔던 혈액의 그룹에 관한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아, 알렉산더 비너(Alexander S. Wiener), 그리고 당시 그의 조교로 일하던 필립 레빈(Philip Levine)과 함께 혈액의 그룹에 관한 심도 높은 연구를 수행했고 혈액의 그룹을 분류하는 데 있어서 풍성한 결과를 얻게 된다. 이때, ABO 혈액형이 아닌, M, N, P형의 혈액 그룹도 발견하게 됐다. 또, 1927년에는 란트슈타이너의 혈액형 연구가 생물학적 부모를 찾는 데 적용되기 시작 했다.

1937년에는 비너와의 연구를 통해 혈액에 Rh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추가적으로 발견해낸다. 즉, ABO식의 혈액형 구분법에서 A 혹은 B 항원의 유무로 구분하듯이, Rh라는 항원의 유무로도 혈액의 종류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혈액검사를 받을 때 양성 또는 음성으로 표기되는 혈액의 타입으로, 붉은털 원숭이(Rhesus monkeys)의 혈액을 이용하여 발견했기 때문에 Rh라는 이름을 쓰게 됐다. 발견 당시, 그 둘은 자신들의 발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바로 깨닫지는 못했다. 그러나 곧 비너는 혈액형 발견 이후에도 수혈 시에 사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출현하는 문제점이 새로운 Rh식 혈액형과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게 됐다. 또한, 이 발견은 필립 레빈이 부딪힌 태아적모구증(erythroblastosis fetalis)에 관한 연구에도 해답을 줄 수 있게 되면서 이에 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간단히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Rh 항원이 없는 Rh 음성 엄마가 Rh 양성인 태아를 임신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엄마의 몸은 자신과 다른 항원이 몸속에 있어도 특별한 이유 없이는 태아의 혈액이 엄마의 몸속으로 유입될 확률이 희박하므로 아기의 혈액에 대한 항체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출산 시 작은 상처 등을 통해 엄마의 몸속으로 아기의 혈액이 유입되면 엄마의 면역 체계는 이를 외래 물질로 인식하고 항체를 만들게 된다. 문제는 둘째 아이 임신 시에 발생하는데, Rh 양성 아기를 가지게 되면 엄마 몸속에 생긴 항체가 아기의 적혈구를 공격하여 파괴하는 태아적모구증이 발생한다. 즉, 첫 아이가 Rh 양성인 경우에는 Rh 음성인 엄마 몸에 아직 항체가 없으므로 무사히 태어날 수 있지만, Rh 음성인 엄마가 양성인 아이를 두 번째로 임신한 경우 이미 양성에 대한 항체가 만들어져 있으므로 아기에게 심각한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또한 란트슈타이너는 같은 그룹끼리의 수혈은 혈액 세포에 이상 현상을 유발하지 않지만 다른 그룹 간의 수혈은 혈액 세포의 파괴를 가져 온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현재 우리가 수혈을 받을 때 반드시 고려해야만 하는, 그리고 이 그룹만으로도 부작용 없이 수혈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혈액의 분류가 이때 완성된 것이다.

(출처. ScienceHeroes.com, © 2008-2010 94W Holdings, Inc.,

© http://www.kmle.co.kr, 위키피디아, 빌리 우드워드 저서-미친연구 위대한 발견)

3)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구한 과학자, 카를 란트슈타이너

 

란트슈타이너의 노력, 수많은 연구 업적과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란트슈타이너는 전쟁 중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였지만 연구에 대한 그의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혈액에 관한 연구를 더욱 진전시키고 싶었던 탓에 전쟁이 끝난 후, 비엔나가 아닌 다른 곳에서 그의 학생들과 연구에 매진했다.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비엔나에서는 더 이상 과학적, 의학적 연구를 진전시킬 희망이 없었다.

1919년, 란트슈타이너는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의 헤이그(The Hague)로 이주하여 로마 카톨릭 병원에서 해부학자로 일했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동료들과 함께 질병 관련 해부학과 면역학 분야의 연구로 다수의 논문을 제출 했다. 그는 매독 관련 면역 부분의 연구로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했고, 왓세르만 반응(Wassermann reaction)에 관한 추가 연구를 수행함과 동시에, 면역학적으로 중요한 요소인 헵텐(haptens)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헵텐이란 면역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작은 분자를 일컫는데, 란트슈타이너는 이 물질을 이용한 면역 현상 연구 분야의 선두주자였다. 그는 새로 발견된 헵텐, 그리고 그 헵텐과 연결되어 있는 단백질에 관한 연구로 12개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 논문들은 헵텐과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 단백질들이 과민증을 유발하거나, 그 비슷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이런 여러 가지 연구를 바탕으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발작 색소뇨증(paroxysmal hemoglobinuria) 연구에 대한 수많은 이론을 밝히는 데 크게 기여 했다.

란트슈타이너는 자신의 전문 분야의 연구에 지치지 않는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전반적인 그의 인생을 살펴보면, 그는 언제나 자신의 주력 연구 분야 외에도 다양한 분야를 관찰하는 학구적인 성향의 사람이었지만, 선천적으로 비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탓에 사람들과는 그리 가깝게 지내지 못했다.

란트슈타이너는 생을 마감하는 그 날까지 혈액의 그룹을 나누는 일에 매진했으며, 혈액 안에서 일어나는 항체의 화학적 작용, 그리고 항체와 여타 면역학적인 요소들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연구했다. 이 연구는 그의 수많은 연구들 중에서도 주목 받았던 매우 중요한 연구로, 혈청학에 화학을 도입함으로써 연구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병리 해부학, 조직학과 면역학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이런 결과는 연구의 세세한 부분까지 기록하고 면밀히 관찰하는 그의 꼼꼼한 성격뿐 아니라, 그의 광범위한 생물학적 식견이 바탕이 되어 이룩할 수 있었던 결과로 여겨진다. 연구자로서의 긴 여정 중, 혈액의 그룹을 나누고 눈부신 연구 업적을 이룩한 1901년부터 그는 명성을 떨치게 되었으며 수많은 연구 업적 중에서도 이 연구로 30년 후인 1930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또한, 그의 연구는 친자확인 소송이나 살인 사건의 재판에서 중요한 증거를 제공, 법의학 발달에도 큰 몫을 했다. 혈액형이 특정한 유전자를 통해 유전된다는 사실은 인류 유전학과 인류학 연구에 유용한 수단을 제공 했다.

1939년, 란트슈타이너는 라커펠러 의학 연구소의 Emeritus Professor(일종의 명예 교수)로 임용되었고 계속해서 열정적으로 연구에 몰두 했다. 평생 동안 346편의 논문을 발표 했고 그 중 많은 연구 내용들이 각 과학 분야의 눈부신 발전을 가져오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사망 당시에도 손에 실험 기구 중 하나인 파이펫을 놓지 않고 있었을 만큼 연구에 열정적이었던 그는 1943년 6월 24일 연구실에서 심장 마비로 쓰러져 이틀 후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2초마다 한 사람씩 수혈이 필요

 

2006년 미국의 적십자사(American Red Cross)의 보고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는 매 2초마다 한명씩 혈액이 부족하여 수혈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연간 3억 회 이상의 수혈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미국 한 나라에서만 1년에 4500만 명의 사람이 수혈로 목숨을 건진다고 한다. 이는 미국민 중 절반이 평생 한번 정도는 수혈을 받는 정도의 수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재까지 수혈로 생명을 구한 사람의 수를 정확한 표로 나타내기 위해 1955년부터 통계화된 자료를 보면, 약 11억 5000만 명이 수혈로 목숨을 구한 것으로 집계되었으며, 참고로 병원에서 가장 많이 요구되는 혈액은 O형 혈액이다. 란트슈타이너의 혈액에 대한 연구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인류의 값진 유산이 아닐 수 없다. 그와 동료들의 혈액에 관한 눈부신 업적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혈을 받을 때마다 살 수 있을지, 혹은 혈액이 응고되어 죽게 될 것인지를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을 것이다.

(출처. © Copyright 2013 The American Red Cross, 위키피디아, 빌리 우드워드 저서-미친 연구 위대한 발견, ScienceHeroes.com, © 2008-2010 94W Holdings, Inc.)

혈액 항원의 개념 및 수혈의 안전성에 대한 보고

 

혈액형 발견 이전은 어두운 혈관 속을 헤매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혈액에 관한 연구나 정보가 전무한 시기였다. 한마디로 말해 그의 연구는 혈액에서 일어나는, 그동안은 알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들의 총체였다고 할 수 있다. 1901년, 그가 발견한 혈액형의 과학적 기초는 적혈구 세포에 존재하는 항원이었는데, 그와 그의 동료들은 항원이라는 이름조차 알고 있지 않았다. 항원이라는 단어는 1908년이 되어서야 만들어졌고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혈액형은 적혈구 세포의 항원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항원을 세포에 붙어 바깥쪽으로 뻗어져 나온 나무로 보면 개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숲에는 여러 다른 종류의 나무들이 있을 수 있으며, 이 개념에 따라 적혈구 세포도 다른 종류의 항원들을 가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란트슈타이너는 1901년, A, B, O 항원을 발견했고 안전하게 수혈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주었다. 수혈 도중 치명적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는 25만 건 중 한 건 정도로 확률이 낮으므로 과거와 비교했을 때, 놀랄 만큼 안전한 방법이 됐다. 그 중 반은 검사자나 수혈 시행자의 실수에 의한 것으로, 보통 혈액검사를 잘 못 수행 하였거나 혈액을 잘못 된 사람에게 주입하는 경우에 발생한다고 한다. 수혈을 통해 B형 간염이 전염될 확률 역시 수혈 실패 확률과 같이 25만 건 중 한 건 정도 발생한다고 하며, 에이즈(HIV)가 수혈을 통하여 전염될 확률도 매우 낮아, 200만 건에 한 건 정도로 보고되고 있다.

(출처. ScienceHeroes.com, © 2008-2010 94W Holdings, Inc.)

Dr. Leopold Landsteiner(레오폴드 란트슈타이너). 법학박사, 저널리스트, 신문발행인 (1817 – 1875). 50세에 니헤스와 결혼.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카를 란트슈타이너의 아버지.

Fanny Freiberg Landsteiner (Hess)(페니 란트슈타이너) (1837 – 1908), 30세에 레오폴드와 결혼. 카를 란트슈타이너의 어머니.

당시 시대적 배경이 독일계 대학에는 유대인의 입학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카톨릭 신자여야했다.

Hermann Emil Fischer. (1852-1919). 독일출생.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푸린과 당 합성에 관한 연구로 1902년 노벨화학상 수상. 단백질의 아미노산으로 분해 성공.

현재, 혈액은 ABO와 Rh형을 포함하여 32가지의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MNS 식, Kell 식, Lewis 식 등이 있다.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Blood_type)

Poliomyelitis (회백수염). 배설물에서 입으로의 경로를 통해 사람에서 사람에게 전염되는 poliovirus (폴리오바이러스)에 의한 급성질환의 일종으로 polio라고도 불린다. 뇌척수의 회백질에 염증이 생기는 질병.

Leonard Landois(레오나르드 란도이즈). 1837-1902. 독일의 생리학자. 수혈과 혈액의 응고현상에 관한 연구의 선두주자. 한 동물에서 얻은 적혈구가 있는 혈액과 다른 동물에서 얻은 적혈구가 없는 혈장액을 섞으면 적혈구가 엉겨 붙거나 터질 수 있음을 보고.

헤모글로빈(hemoglobin). 모든 척추동물의 적혈구 세포에 존재하는 산소를 운반하는 단백질로 철(iron)을 포함하고 있다.

serum(혈청). 전체 혈액에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그리고 피브리노겐과 프로트롬빈을 뺀 나머지. (피브리노겐과 프로트롬빈은 혈액을 응고시키는 성분)

plasma(혈장). 전체 혈액에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을 뺀 나머지.

Agglutination(응집). 각기 다른 혈액군의 구성성분을 섞었을 때, 덩어리를 형성하는 현상을 일컬으며, 당시에는 clumping 이라는 용어를 이용하여 덩어리처럼 뭉쳐지는 현상을 표현했다.

경우의 수 = n x (n-1), n = 혈액의 수

1차 세계대전. 1914-1918년. 약 4년 4개월간 지속된 최초의 세계대전.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지지하면서 오스트리아에 전쟁을 선포하면서 발발. 연합국과 독일 간의 휴전이 성립되어 종전. 종전 후 미국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의 제안으로 국제 연맹 설립.

Alexander S. Wiener(알렉산더 비너). 1907-1976. 면역유전학자로 혈청학과 수혈, 태아적모구증에 관한 연구 수행. 혈액의 Rh 요소 발견에 기여.

Philip Levine(필립 레빈). 1900-1987. 혈액면역학자로 태아적모구증 및 수혈에 관한 연구 수행.

태아적모구증(erythroblastosis fetalis). 어머니 모체에서 태아의 적혈구에 대한 항체가 생성되어 태반을 건너와 태아의 적혈구와 결합하여 생기는 용혈성 빈혈. (태아의 적혈구가 엄마의 항체의 공격으로 파괴되어 빈혈을 일으키게 된다.)

Wassermann reaction(왓세르만 반응). 왓세르만 테스트라고도 하며, 매독을 진단하기위한 방법.

Hapten(헵텐). 단백질 같은 큰 캐리어 분자에 붙어서 면역반응을 유도할 수 있는 작은 분자들을 총칭하는 단어. 헵텐은 캐리어 분자에 결합하지 않은 상태로는 혼자서 면역반응을 유도할 수 없다.

Paroxysmal hemoglobinuria(발작 색소뇨증). Paroxysmal nocturnal hemoglobinuria와 Paroxysmal cold hemoglobinuria. 발병원인에 따라 이 두 가지 종류로 나뉨. 소변에 혈액이 섞여 나오는 질병.

Emeritus Prefessor. 학교나 연구소에서 퇴임한 교직자 중, 재직 당시의 연구 결과가 뛰어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명예로운 직함으로 남자의 경우, professor emeritus, 여자는 professor emerita라고 한다.

American Red Cross(미국 적십자). American National Red Cross로도 알려져 있다. 국제적십자사는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고, 공중보건 및 시민권을 증진시키는 데 관여하는 100여 개가 넘는 자치적인 국공립 단체들로 구성된 국제기구 내지는 연합체로 국가 간의 전쟁이나 분쟁에서 중립적인 중개자로서 활동. 미국적십자사는 재해구호, 군인 및 재향 군인들에 대한 사회봉사, 보건 및 안전 프로그램, 병원에 혈액 및 인체기관의 기증 등을 조정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출처. 사회복지학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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