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
난이도 : 중급
별도 시계가 될 수 있을까?
(1974년 노벨물리학상, 마틴 라일, 안토니 헤위시)
관련연도: 1974년
필자 : 이창환 교수

펄서의 발견을 통하여 중성자별의 존재를 확인한 공으로 헤위시(Antony Hewish)는 1974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헤위시와 공동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라일(Martin Ryle)은 펄서의 직접적인 관측은 아니었지만, 전파 관측을 통하여 위치 추정이 가능한 전파관측 기술을 발전시킨 공으로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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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이 지구의 자전 및 공전에 의해 결정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의 삶의 리듬이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낮과 밤이 반복되는 주기와 계절의 변화가 반복되는 주기에 의해 하루 및 1년이 정해진 것이다. 인류가 다른 행성에서 태어났다면 지금과는 다른 시계를 사용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 [그림] 지구사진 http://en.wikipedia.org/wiki/Earth

  • [그림] 미국 NASA의 화성탐사선 MGS(Mars Global Surveyor)의 사진을 바탕으로 컴퓨터로 재구성한 화성 사진 http://en.wikipedia.org/wiki/Mars

  • [그림] 목성사진 http://en.wikipedia.org/wiki/Jupiter

만약 화성에 화성인이 살고 있다면, 화성인의 하루는 우리의 하루와 같은 길이일까? 화성인의 일 년은 지구의 일 년에 비해 얼마나 길까?

화성의 자전주기는 지구보다 약간 길어서 24시간 39분 35초 정도로 화성인의 하루는 지구의 하루보다 조금 길다. 화성의 공전주기는 약 687일로 지구의 공전주기의 약 2배이다. 그런데 화성의 자전축도 지구처럼 기울어져 있어서 화성인도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즉 화성인에게 한 계절의 길이는 지구의 약 2배가 되는 것이다.

목성은 어떨까? 목성의 자전주기는 약 9.9시간인 반면 공전주기는 약 12년으로 매우 길다. 만약에 목성인이 존재한다면, 목성의 하루는 지구에 비해 약 2.5배 짧으므로, 목성인은 우리보다 매우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것이다.

목성의 아름다운 줄무늬는 빠른 자전 속도가 원인이다. 하지만 목성인에게 계절의 변화는 매우 천천히 일어날 것이다.

 

천체의 운동과 시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과거로 돌아가 보자. 조선시대 사람들도 지구의 하루는 지구가 24시간에 한 바퀴 도는 현상에 기인하고 있으므로, 아침이 동이 트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음은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이 흘렀음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조선시대에는 하루를 십이지로 나누어 시간을 표시했다.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인 자시부터 시작하여 2시간씩 끊어서 축시(1시~3시), 인시(3시~5시), 묘시(5시~7시), 진시(7시~9시), 사시(9시~11시), 오시(11시~13시), 미시(13시~15시), 신유(15시~17시), 유시(17시~19시), 술시(19시~21시) 및 해시(21시~23시)로 나타내었다. 이 시간들은 태양의 위치 및 별의 위치로 짐작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림] 십이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s://ko.wikipedia.org/wiki/%EC%8B%AD%EC%9D%B4%EC%A7%80#.ED.95.9C.EA.B5.AD

시계가 없었던 조선시대 사람들은 한 시간보다 짧은 시간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밥 한 끼를 먹을 정도의 시간을 ‘한식경’으로 표현했는데 약 30분에 해당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식사 시간이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매끼마다 식사 시간이 달라지므로 ‘한식경’은 정확한 시간의 단위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보다 짧은 시간으로 ‘일다경’이 있다. 말 뜻 그대로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실 시간인데, 차 마시는 시간은 사람마다 차이가 많이 나서 5분에서 20분 사이의 대략적인 나타내는 것에 불과했다.


  • [그림] 해시계 사진 : 앙부일구 보물 제845호, 국립고궁박물관

  • [그림] 물시계 : 자격루, 국보 제229호, 서울 중구 궁중유물전시관

좀 더 정확한 시간으로 약 15분 정도에 해당하는 ‘일각’이 사용이 되었다. 예를 들면 해시(21시~23시)를 8등분으로 나누어, 해시 정각(21시 정각), 해시 일각(21시15분), 해시 이각(21시30분), 해시 삼각(21시45분), 해시 반각(22시), 해시 오각(22시15분), 해시 육각(22시30분), 해시 칠각(22시45분)으로 나타내었다.

태양의 위치 변화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한 해시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용이 되었으며 조선시대의 앙부일구는 일부가 남아 보물로 지정이 되었다.

그런데, 일각보다 매우 짧은 시간은 어떻게 잴 수 있을까? 태양과 별과 같은 천체의 위치 변화로는 더 이상 측정이 어려우므로 물시계가 많이 사용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통일신라시대에 물시계를 사용 및 관리한 기록이 있으며, 세종대왕 때 장영실이 만든 물시계 자격루는 아직도 일부가 남아 국보로 지정이 되었다.


[그림] 2004년부터 작동중인 세슘원자시계 (스위스) https://en.wikipedia.org/wiki/Atomic_clock

이후 문명이 발전하면서 매우 짧은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시계가 발전이 되었다. 더 이상 천체의 운동으로 시간을 측정하지는 않는다. 현대에는 매우 정확한 시간 특정을 위하여 원자시계까지 등장하였다.

세슘원자 시계는 30만 년에 1초의 오차 정도로 정확하게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자동차 GPS 수신기는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24개의 위성에서 오는 신호를 분석하여 현재의 위치를 측정하고 있다.

GPS 위성에는 원자시계가 탑재되어 있어 정확한 시간을 지구로 보내주고 있는데, 각 위성에서 보낸 신호는 GPS 수신기와 위성의 거리에 따라 도착시간이 달라지고 이 시간차를 이용하여 위치를 측정하게 된다.

 

우주의 시계 펄서의 발견

 


[그림] 미국 뉴멕시코주 전파명원경 VLA https://en.wikipedia.org/wiki/Radio_astronomy

태양계 내 지구의 운동에 의해 정의된 시간을 재는 시계는 더 이상 천체의 운동을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1분 1초를 다투며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이 원하는 정확한 시간을 재기에는 천체의 운동이 너무 느리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을 변화시킨 놀라운 전파 관측이 이루어지게 된다.

1967년 조셀린 벨(Jocelyn Bell)과 앤터니 휴이시(Antony Hewish)는 전파망원경을 이용하여 우주에서 오는 전파를 관측한 결과 매우 규칙적인 주기 신호를 발견하였는데 신호의 주기가 1.337초로서 펄서로 이름이 붙여졌다. 과연 펄서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림] 빛의 파장에 따른 대기 투과도: 우주에서 오는 전파는 지상까지 도달 가능하므로 인공위성과의 통신 및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지상의 전파 송수신 장치를 이용하여 외계인과의 통신도 가능하다. http://en.wikipedia.org/wiki/File:Atmospheric_electromagnetic_opacity.svg

우리가 알고 있는 별은 비록 하늘에서는 작게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매우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태양의 반경은 약 70만 km로 지구 반경의 약 110배에 이르며 자전 주기는 약 25일이다. 따라서 태양의 자전에 의한 신호는 관측된 펄서 신호의 원인이 될 수 없다.

반면 태양 표면은 수소 가스가 대부분이며 흑점도 존재하고 자기장도 존재하는 변화무쌍한 영역이다. 엑스선 망원경으로 촬영한 태양의 모습에서 태양 표면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유동적인 가스 상태인 태양 표면에서 초 단위의 주기를 가진 정확한 펄서 신호를 방출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림] 태양표면의 엑스선사진 http://en.wikiversity.org/wiki/File:Sun_in_X-Ray.png

태양보다 매우 작은 백생왜성은 어떤가? 관측되는 대부분의 백색왜성의 질량은 태양 질량의 반 정도이지만 크기는 지구와 비슷하다. 백색왜성에서 초 단위의 주기를 가진 매우 규칙적인 신호를 방출하는 것은 가능할까? 백색왜성이 아무리 빠르게 회전을 하더라도 자전주기가 초 단위가 될 수는 없다.

이렇게 빠르게 회전하면 백색왜성이 불안정해서 더 이상 안정적인 별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색왜성의 표면은 헬륨, 탄소 및 산소 등의 가스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백색왜성의 표면에서 펄서 신호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지구와 같은 외계행성에서는 펄서 신호를 만들 수 있을까? 물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전파를 이용하여 통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신호는 전자회로를 통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즉, 지구에서 만들어진 전파 신호는 인류 문명의 산실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주기가 너무나 짧고 규칙적인 펄서 신호는 문명을 가진 외계 생명체가 아니고서는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어져서, 이 발견은 곧 외계 생명체의 발견으로 추정되기도 하였다.


[그림] 영화 콘택트 사진 https://en.wikipedia.org/wiki/Contact_(film)

지금도 외계 생명체 발견에 전파망원경이 부분적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칼 세이건의 소설 <>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에서도 사막에 있는 전파망원경을 이용하여 외계인을 찾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과연 이 신호는 어떻게 만들어 졌으며 외계인은 존재하는 것일까?

중성자별과 펄서

 

펄서의 발견에 앞서, 질량은 크지만 크기가 매우 작은 ‘중성자별’의 가능성을 예측한 과학자가 있었다. 하지만 이 예측은 펄서가 발견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과학자들조차도 잊고 있었다.


[그림] 헬륨원자 가상도. 중심부의 매우 작은 공간에 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로 구성된 핵이 있고, 주위를 전자구름이 둘러싸고 있다. (전자는 점입자처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구름과 같이 핵 주위에 분포하고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Atom

20세기에 들어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의 구조가 밝혀지기 시작했다. 원자의 중심부에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 원자핵이 있고 외각에 전자껍질이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현대 문명에 필수가 되어버린 원자력 발전도 이 원자핵 내부의 변화에 의한 것이다.

중성자와 양성자로 구성된 원자핵의 밀도는 각 변의 길이가 1cm인 각설탕만한 부피에 1억 톤에 해당하는 질량을 담은 것과 같은 어마어마한 양이다. 다른 말로 원자의 대부분의 질량은 중심부의 작은 영역에 몰려있고, 대부분의 공간은 비어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채드윅(James Chadwick)에 의해 중성자의 존재가 실험으로 확인된 직후인 1934년 바데(Walter Baade)와 즈뷔키(Fritz Zwicky)는 중성별의 존재가능성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채드윅은 별 전체의 밀도가 원자핵의 밀도에 해당하는 중성자들로만 구성된 중성자별의 존재 가능성을 예측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용하여 중성자로만 구성된 별을 계산해 보면 질량은 태양의 2~3배에 이를 수 있는 반면 반경은 십여 km 밖에 되지 않는다.

태양의 반경이 70여만 km이고 지구의 반경도 약 6400km인 점을 감안하면 중성자별의 존재는 당시로서는 믿기가 어려웠다.


  • 크렙펄서(Crab Pulsar)가 발견된 게성운 사진. http://hubblesite.org/newscenter/archive/releases/2002/24/image/a/

  • [그림] 빠르게 회전하는 자화된 중성자별에서 펄서 신호를 내는 상상도 https://en.wikipedia.org/wiki/File:Pulsar_schematic.svg

그런데 펄서의 발견으로 중성자별의 존재 가능성이 다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중성자별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안정적인 중성자별의 자전주기가 1초보다 짧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펄서가 최초로 발견된 이후 현재까지 천 여 개의 펄스가 발견되었고, 펄스 주기의 시간에 대한 변화 관측을 통하여 펄스가 강한 자기장을 가진 중성자별임이 밝혀졌다.

펄서의 발견을 통하여 중성자별의 존재를 확인한 공으로 헤위시(Antony Hewish)는 1974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헤위시와 공동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라일(Martin Ryle)은 펄서의 직접적인 관측은 아니었지만, 전파 관측을 통하여 위치 추정이 가능한 전파관측 기술을 발전시킨 공으로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이 수상에서 펄서 발견 당시 직접 관측을 수행한 여성 대학원생이었던 조세린벨(Jocelyn Bell)이 제외되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Martin Ryle, Antony Hewish, 그리고 Jocelyn Bell

 

마틴라일 (Martin Ryle, 1918~1984)


  • [그림] 마틴라일 (Martin Ryle, 1918~1984)

  • [그림] 라일망원경 : 마틴 라일의 이름을 딴 전파망원경으로 영국 멀라드전파천문연구소(Mullard Radio Astronomy Observatory)에 소재. http://en.wikipedia.org/wiki/Mullard_Radio_Astronomy_Observatory

마틴라일은 의사이자 교수였던 John Alfred Ryle의 아들로 브라이턴(Brighton)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후,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통신연구소(Telecommunications Research Establishment)에서 군사용 레이더 안테나 디자인에 참여한 경험이 있으며, 전쟁 후 캠브리지 대학의 카벤디쉬 연구소(Cavendish Laboratory)에서 태양에서 오는 전파 연구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후 그는 캠브리지 대학에서 천문학 간섭계 개발을 주도하였다. 그는 우주에서 오는 매우 약한 전파는 외부 은하에서 오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보다 나은 전파 망원경의 개발이 우주론의 모델을 검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개발된 전파 간섭계를 통하여 활동성 은하핵 퀘이사 (Quasar)를 최초로 발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1974년 천문학에 수여된 첫 노벨상의 공동수상자가 되었다. 마틴라일은 함께 연구하기가 어려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며, 캠브리지 그룹의 연구비 확보를 위하여 연구기밀의 노출을 대우 꺼려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토니 휴이시 (Antony Hewish, 1924~)


[그림] 안토니 휴이시

안토니 휴이시 박사는 1924년 영욱 포웨이(Fowey)에서 태어난 전파천문학자이다.

전쟁 중에는 통신연구소(Telecommunications Research Establishment)에서 마틴라일과 함께 일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력은 전쟁 후 캠버리지 대학교의 마틴라일 연구팀에 합류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우주 전파 소스의 섬광(Scintillation) 효과에 대한 연구를 주도하여 1967년 멀라드 천문 관측소(Mullard Radio Observatory)에 펄사어레이(Pulsar Array)를 설치하여 우주 전파원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1967년 당시 그의 대학원생이었던 조세린 벨(Jocelyn Bell)은 새로운 우주 전파원인 펄서를 발견하였다. 이 공로로 1974년 노벨상이 전파 천문학을 개척한 마틴라일과 펄서의 발견에 기여한 공으로 안토니 휴이시에게 수여되었다.

이 수상에서 실재 펄서를 발견한 조세린 벨이 제외된 것은 이후 대학원생과 지도교수의 위상에 대한 많은 논란을 가져 왔다. 비슷한 일이 다시 발생한다면 아마도 새로운 것을 직접 발견한 대학원생도 노벨상 공동 수상자 명단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세린 벨 (Jocelyn Bell)


[그림] 조세린 벨 (1943~) 옥스퍼드대 교수.

http://en.wikipedia.org/wiki/Jocelyn_Bell_Burnell

조세린 벨은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 벨패스트(Belfast)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플라네타륨(Armagh Planetarium) 설계를 도운 건축가였다. 캠버리지 대학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그녀는 2년 이상 전파망원경 건설에 참여하였으며, 펄서를 처음 발견하였지만, 당시 신분이 대학원생이어서 지도교수인 안토니 휴이시 박사만 마틴 라일과 함께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펄서 발견은 그녀의 끈기 있고 지속적인 노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초당 약 한번 정도의 매우 규칙적인 신호를 찾아 내기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30미터에 이르는 종이를 검토해야 했다.

그녀에 의하면, 처음에 휴이시 교수는, 그녀의 발견을 전혀 믿지 않았으며, 벨이 발견한 신호는 인간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로, 비록 전파망원경 건설 자체는 휴이시 교수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펄서 발견의 주요 공로는 조세린 벨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 있던 그녀였지만, 그 후 지속적인 연구를 수행하여 2002년부터 2년간 영국 왕립천문학회(Royal Astronomical Society)의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펄서 발견 40주년인 2007년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현대인들은 일상생활에서 더 이상에 시계에 의존하지 않고 핸드폰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정확한 시간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기지국에서 전파 신호를 통하여 정확한 시간을 실시간으로 전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명사회에서 펄서를 시계로 이용할 일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펄스의 발견으로 외계 문명이 아닌 천체현상에 의해 매우 규칙적인 주기의 전파 신호가 발생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중성자별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다. 이 발견은 나아가 블랙홀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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