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ysics Story
물리스토리
1988
난이도 : 초급
레더만 교수와 박태준 회장
(레더만 교수와 박태준 회장)
관련연도: 1988년
필자 : 김제완 교수

돌아가신 박태준 회장님의 존함을 처음들은 것은 미국에 있을 때였다. 일리노이주 샴페인-어바나 (Champaign Urbana)에 있는 일리노이대학교의 연구원으로 있을 때 였다. 기억이 맞다면 아마 1968년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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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있는 박태준 회장

돌아가신 박태준 회장님의 존함을 처음들은 것은 미국에 있을 때였다. 일리노이주 샴페인-어바나 (Champaign Urbana)에 있는 일리노이대학교의 연구원으로 있을 때 였다. 기억이 맞다면 아마 1968년쯤 이었다.

친구의 부인이 포항에 큰 제철공장이 생길 것이니 포항에 땅을 좀 사놓으면 좋을 것이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때 처음 고 박태준 회장님의 존함을 알게 되었다. 그 친구 부인의 동생이 제철소건설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박태준 회장님이 하시는 일이기에 제철회사는 성공할 것 이고 그 주위의 땅값은 틀림없이 오른다는 설득을 그로부터 받았다. 연구원 생활이 박봉이긴 하지만 그래도 약 3천불정도의 여윳돈이 있어서 땅을 사게 되었고 땅값이 오르는 바람에 간접적으로 박태준 회장님의 덕을 본 적이 있다.

1970년대가 되면서 여남공대 학장으로 계시던 고 김호길 박사를 가끔 만났다. 그는 언제나 가속기 이야기를 화두로 내세웠다. 김호길 학장을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그는 남을 설득하는데 특유한 재능을 지닌 분이었다. 술이나 좀 들어가면 그 특유한 언변으로 진주에 최신식 “반데그라프”라는 가속기를 설치해서 암 치료에 필요한 방사능 동위원소를 생산하여 우리나라 태생이면 해외에 있더라도 암 치료를 위해서는 꼭 여남공전을 찾도록 하겠다고 역설하곤 하였다.

그림) 1960년대에 지은 영일대의 한 모습

그런데 1980년대가 되면서 그는 포항공대 학장으로 부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포항공대를 방문하면 투숙하게 되는 영일대가 있다. 근대식 호텔처럼 잘 차려져있기 때문에 포항공대가 개교하면서 지은것인줄 생각됐더니 박태준 회장께서 포항제철 건설 당시 지은 숙소라고 전해들었다.

고 박태준 회장님의 손길과 한발 앞서나가는 그의 안목이 영일대 구석구석에 스며있는 것을 느꼈다. 김호길 박사와는 미국에 있을 때부터 친하게 지냈다. 내가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 홉킨스(Johns Hopkins)대학에 있을 때 김호길 박사는 같은 주에 있는 메릴랜드 대학(University of Maryland)에 교수로 있어서 그때부터 가족들과도 친한 사이였다. 어느 날 김호길 박사가 식사 초대를 하기에 저녁을 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고 박태준 회장님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그 동기는 이러했다. 김박사께서는 여남공대에서 세계최고의 이온가속기를 지어서 유명한 암치료센터를 만들겠다더니 왜 포항공대로 오게 되었는지 내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박태준 회장께서 포항공대를 맡아 달라고 하시기에 김호길 박사께서는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포항공대에 “방사광 가속기를 지어주신다고 약속을 해주셔야 하겠습니다.”라고 박태준 회장님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통 큰 박태준 회장답게 “좋습니다. 그러나 나도 조건이 하나있습니다.

첫해에 포항공대를 지망하는 학생의 수능점수 Cut line이 200점(기억이 나지않아 그냥 필자가 제시한 숫자임)을 넘어야 김박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렇게 대화가 오갔고 포항공대는 첫해에 Cut line이 200점을 넘었다. 그렇게 하여 오늘의 “포항 방사광 가속기”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림) 박태준 회장님이 지원하여 건설된 포항방사광가속기

포항공과대학교 자체가 우리나라 과학교육에 크게 이바지했다는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른 재벌기업들처럼 있는 대학을 인수한 것이 아니라 뚜렷한 이념을 갖고 세운 학교라는 것이 다른 대학들과는 다르다. 특히 “포항 방사광 가속기”는 국가가 아닌 기업이 세운 국가적 연구시설이다. 이 시설을 통하여 물성연구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담백질 구조 연구 등 생명과학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박태준 회장같이 앞을 내다보는 통큰 분이 없었더라면 아마 우리나라에는 이런 국제규모의 가속기는 세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가속기의 건설과정에서도 박태준 회장님의 숨은 리더십이 느껴진다. 가속기를 연구하여 박사를 받은 김호길 학장이었지만 실제 건설에는 그렇게 많은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속기 건설의 묘수로서 중국과학자와 계약을 맺어서 좋은 가속기를 단시일에 완성한 것도 박태준 회장께서 포항제철을 기간 내에 완수하게 된 그 전법을 전수 받은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다. 아무튼 가속기시설은 박태준-김호길 콤비가 남긴 국가적 기반연구 시설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박태준 회장님을 직접 뵈옵게 된 것은 1989년경으로 기억된다. 박태준 회장께서 카네기 메론대학교(학교명이 확실하지는 않다.)에서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으셨다. 그런데 그때 같이 명예박사를 받은 레온 레더만(Leon Lederman)교수가 서울대를 방문하게 되었다. 김호길 박사를 통하여 레더만 교수와 저녁식사를 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신라호텔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림) 레더만 부부와 함께 페르미연구소 옆 중국집에서

박태준 회장님, 레온 레더만교수(1988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 김호길 학장 그렇게 네명이 같이 식사를 하였다. 그런데 박회장님께서 와인을 시키시는데 “라피 로칠드(Lafite Rothschild)”라는 유명한 브렌드를 주문하시는 것이었다. 나 자신도 미국에 있으면서 와인을 좋아하여 없는 돈을 아껴서 즐겨 마시는 편이었다. 그러나 가난한 교수인지라 30불이 넘는 와인은 특별한 경우에 마셔보았지 보통은 20불 이하에 한정하고 있었다. 와인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라페”는 페트루스(Petrus), 마고(Margaux) 등과 더불어 불란서의 특급와인이다. 년도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라페”인 경우 레스토랑에서는 한병에 적어도 백만원은 할 것이다. 그때 박태준 회장과 레온 레더만 덕분으로 마셔본 그 “라페”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식사가 다 끝날 무렵 나는 박태준 회장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박회장님 저는 말로만 듣던 ‘라페’를 마셔보긴 이번이 처음입니다. 학교 동료들에게 자랑도 할 겸 기념으로 빈병을 갖고 가고 싶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그랬더니 박회장께서 그렇게 하시라고 흔쾌히 승낙하시었다.

그림) 라페를 생산하는 샤토와 라페 포도주병

저녁이 끝나고 나오는데 호텔식당의 와인 스튜와드가 쇼핑백에 담은 와인병을 건내주었다. 그런데 쇼핑백이 빈병만 들었는데도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박회장님께 “아마 ‘라페’는 비싼 와인이라서 빈병도 무거운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박회장께서는 호쾌히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김교수! 어떻게 빈병을 드립니까? 제가 채워서 드립니다.” 그렇다! 박회장께서는 그 비싼 와인 두병을 쇼핑백에 담아 주신 것이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고맙다는 말씀조차 드리지 못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박회장님의 그 웃음소리가 TV에 비친 그의 영정을 본 순간 떠오르기도 했다.

박회장님이 이루어 놓으신 정치적 사회적 없적에 대해서는 별로 많은 것을 아는바 없다. 다만 포항제철이라는 국가산업을 있게한 통큰 거인이시고 고 김호길 박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과학교육을 “업그레이드”하셨고 국가조차 부담이 가서 어려운 “포항 방사광 가속기”라는 기초과학기본시설을 있게 한 “거인”이시라는 것만 알고 있다. 그때 처음 맛본 “라페”의 그 부드러운 맛과 호쾌한 인품에 숨어있는 그의 인자함을 또한번 느끼게 한다. 저 세상에서도 많은 일을 하시도록 고인의 명복을 머리 숙여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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